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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강을 건너온 역사(18) 6. 양반들의 임진별서와 민중의 삶 (1) 고려시대 판 간척사업, 임진강 저지대를 개척한 순흥 안씨

입력 : 2020-08-28 04:2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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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강을 건너온 역사(18)

 

6. 양반들의 임진별서와 민중의 삶

(1) 고려시대 판 간척사업, 임진강 저지대를 개척한 순흥 안씨.

 

 

강은 이편과 저편을 가르는 경계이자 경계를 연결하는 통로다. 길 가는 사람은 누구든 그 앞에 멈춰 서서 한 숨을 고른 뒤에야 길을 갈 수 있다. 경계는 자신을 고집하지만 넘나드는 이들에 의해 순간순간 새로운 충격에 놓인다. 강마을은 막다른 산골이나 일찍부터 눌러앉은 들마을과는 다른 생동감이 넘치는 공간이다. 그 옛날 국경이었고, 이후 1천년을 수도권 외곽으로 위치했던 임진강은 정치변화에도 민감하게 노출된 공간이었다. 다만 임진강은 지형적으로 범람에 취약한 구조를 가지고 있었다. 때문에 구석기시대부터 인류의 흔적을 남긴 곳이면서도 강 하구 저지대에 마을이 들어선 것은 고려 말에 와서야 가능했다.

파주 서교는 황폐하여 사람이 살지 못했는데, 정당 안목이 처음으로 넓게 밭을 개간하고 큰 집을 짓고 살았다. 그 손자 원에 이르러 지극하게 창성하였는데, 안팎으로 차지한 밭이 무려 수만 경이나 되고 노비도 백여 호나 되었다. 늙은 고목 천여 그루가 10리에 그늘을 이루고 거위와 황새가 그 사이에서 울고 떠들었다. 지금도 남은 땅을 나누어 차지하고 사는 사람이 백여 명이나 되는데 모두 그 자손이다.(성현. 용재총화중에서)”

안목은 우리나라에 성리학을 전한 안향의 손자다. 순흥안씨는 안향 이후 안목까지 3대째 과거에 급제하면서 유력한 중앙관료 성장했다. 안목은 정치권력과 재력을 기반으로 임진강 하류 저습지 개척에 나선다. 개척 토지의 경우 완전한 소유가 인정됐기 때문에 대물림되면서 손자인 안원 때에 이르러서는 대규모 농장이 완성되기에 이른다.

 

 

 

이들이 개척한 땅의 규모는 어떻게 봐야 할까?

목동의 피리 소리 장포 밖에 들리고/ 고깃배의 두어 점 등불이 낙암 앞에 보이도다.”

안목이 파주농장에서 지었다는 시다. 장포 너머에서 피리소리가 들려오고, 앞으로는 임진강 낙하의 등불이 보인다. 파주시 내포리와 낙하리 주변 어디임이 분명하다. 이곳을 중심으로 농장을 넓혀갔다면 이들이 자리 잡은 곳은 현재 파주 문산읍과 탄현면 월롱면지역이 된다. 수만 경이라면 이 지역을 합친 면적을 훌쩍 넘는다. 단순히 환산한 수치로 규모를 확정할 수는 없을 것 같다. 다만 노비가 백여 호 됐고, 땅을 차지한 자손이 백여 명이라는 진술만으로도 그 규모가 엄청났음은 짐작할 만하다. 안원은 이곳에서 유유자적하며 살았다. 성현은 용재총화에서 파주농장에 머물던 안원의 모습을 묘사한다.

쌍매당 이첨이 낙하를 건너 한양으로 향하다가 길 옆 산골짜기에서 책 읽는 소리를 듣고, 종에게, ‘이는 반드시 안원일 것이다하였는데, 가서 보니 왼쪽 팔에 매를 올려놓고 오른손으로 책장을 넘기며 나무에 의지하여 책을 읽고 있으므로 서로 보고 크게 웃었다.”

여유롭고 풍족한 삶이 엿보이는 장면이다. 그러나 안원은 그저 전원에 묻혀 한가했던 사람은 아니다. 고려와 조선에 걸쳐 고위직을 지냈고 조선의 한양 천도 이후에는 옛 도성인 개성의 유후를 지낸 인물이다. 개성에 큰 세력을 가진 재력가였다. 조선 2대왕 정종이 한양을 버리고 개성으로 환도했을 때 머문 곳이 안원의 집이라는 사실만 봐도 그가 얼마나 큰 저택을 소유한 재력가인지 알 수 있다.

순흥안씨의 황무지 개척은 개성에 근거를 두고 벌인 세력의 확장이었다. 이들이 개척한 임진강 하구는 지금도 저습지대로 물난리를 겪는 곳이다. 농사가 모든 것이던 시절 내포리 앞 농지는 돈 주고 사지 않는다는 말이 있을 만큼 경작이 어려운 곳이었다. 장포니 탄포니 하는 지명에서 보듯 이곳은 수시로 바닷물이 드나들던 갯가였다. 안목의 농장개척은 일종의 간척사업이었던 셈이다. 비교하자면 현대 정주영회장이 벌인 서산 간척사업의 고려시대 판이라 할까?

 

 

이재석

DMZ생태평화학교장

[임진강 기행], [걸어서만나는 임진강] 저자

 
#11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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